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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있는 여행지/대구 경북 여행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by 내이름은 시니어 2011. 6. 9.

201167일 소백산 등산을 마치고 영주에서 1박한후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거쳐 부석사를 다녀오다.

 

 

부석사입구 주차장옆에 있는 폭포 다양하게 물줄기를 내뿜고 있네요부석사 여기서 500m라고 써 있어요

 

 

 

부석사 입구 매표소

 

 

 

 

 

 

 

 

 

 

 

 

소백산을 갔다왔는데 여기는 태백산이 가까운가 봅니다. 태백산 부석사라고 되있습니다.

 

 

 

 

 

 

 

 

 

 

 

부석사 전경

 

 

 

 

이 탑은 통일신라 후기 3층 석탑으로 쌍탑이다 높이는 동탑이 360cm, 서탑은 377cm으로 두 탑의 크기와 양식이 거의 같다 이중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린 것으로 무량수전의 동쪽에 있는 석탑과 같은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정제된 모습으로 신라 석탑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기단과 탑신부의 몸돌에는 기둥을 본 떠 새겼는데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조각을 두었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각 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윗부분은 없어졌는데 지금 놓여져 있는 것은 뒤에 보충한 것이다.

 

 

 

 

 

 

 

 

 

 

 

 

 

 

 

 

 

 

 

 

 

 

 

 

 

 

 

 

국보 제 18. 소재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이 건물은 부석사의 본전으로 보처(주불의 좌우에 모신 보살)없이 화엄도량에 서방극락세계의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시고있다. 신라 형식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초석을 다듬어놓고 그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주심포(기둥 머리에 얹은 포)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로유명하다 -중략-
건물 천장부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은 외관의 세련된풍모와 아울러 한국건축의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신라 문무왕 1(661)에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공부하기위해 당나라에 갔을때 의상 스님을 연모한 선묘라는 낭자가 있었다. 의상스님이 장안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삼장 문하에서 10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심오한 경지에 이른 후 귀국 뱃길에 오르자,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의상스님이 탄 배는 벌써 수평선 뒤를 사라지고 없자 바다에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스님이 탄배를 호위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한다

 

그 후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자 선묘신룡이 나타나 조화를 부려 이바위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물리쳤다 하여 부석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이중환의 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아래윗 바위 사이에 갹간의 큼이 있어 실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뜬돌임을 알 수 있다 라고 적혀 있다. 이리하여 절 이름을 부석사라 불렀으며 그 후 선묘 신룡이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 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