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어느 잡지에서 박완서 선생을 인터뷰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 기사에서 기자가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선생께서는 “그것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읽는 순간 큰 감동을 받았다. 그동안 나는 고통을 극복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극복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능동의 결심과
투쟁적 행동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내가 지금 어떠한 고통이든 참고 견디려는 노력의 자세를 지니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의 그 귀한 말씀이 힘이 되었다.
누구든 고통 없는 삶은 없다. 그러나 어떻게 참고 견디느냐 하는 문제만 남아 있을 뿐,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부터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어린 자식을 잃고 비탄에 잠긴 젊은 부부에게 한 현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 당신들이 겪고 있는 그 일은 마치 끓는 물속에 던져진 것과 같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계란이라면 끓는 물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차차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게 되겠지요. 하지만 당신들이 감자라면 끓는 물속에서 더욱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지면서 탄력이 생기겠지요. 당신들은 어느 쪽이고 싶습니까?”
고통은 이렇게 선택적일 수 있다. 고통 앞에 어떠한 태도를 지닐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 고통이 계란처럼 굳어버릴 수 있고,
잘 익은 감자처럼 부드러워질 수도 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도 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 고통의 의미를 찾았을 때 성립될 수 있는 말이다.
-정호승의 새벽편지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 중에서-
'느낌이 좋은 글과 시 > 좋은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있는 그대로가 좋다. (0) | 2011.08.08 |
---|---|
항상 기쁜 마음을 간직하라. (0) | 2011.08.05 |
가슴이 찡한 목수의 마지막 선택 (0) | 2011.07.27 |
괴팍한 할망구 (0) | 2011.07.25 |
내 삶이 수채화였으면 좋겠다 (0) | 2011.07.22 |